무의 철학(무소유)
- S. I. -
無無明亦無無明盡(무무명역무무명진),乃至無老死(내지무노사), 亦無老死盡(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무고집멸도) 〭
뿐만이냐! 싯달타께서 깨달으셨다고 하는 12연기의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도 없다. 이렇게 12연기의 부정은 노사의 현실에까지 다다른다. 그러니 노사도 없고 노사가 사라진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러한 12연기를 요약적으로 표현한 고·집·멸·도 또한 없는 것이다.(P220)
나는 『반야심경』을 “공空의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야심경』은 철두철미한 “무無의 철학”입니다. “공이다”라는 규정성조차도 부정해버리는 철두철미한 부정의 논리지요. 그 부정은 불교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불교의 주인공인 싯달타 대각자의 진제眞諦를 다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불교는 불교를 전면으로 부정한 지혜의 사상을 지혜의 완성(바라밀다)으로 옹립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승불교의 장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인류사상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장쾌한 사상혁명입니다.(P223)
無智亦無得(무지역무득), 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 〭 앎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반야 그 자체가 무소득이기 때문이다! (P223)
여기 무소득이라는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무소득”이라는 말은 이미 법정法頂 스님께서 “무소유”라는 말로 충분히 대중을 설득시켰고 또 그것을 돌아가시기 전에 완전히 실천하셨기 때문에 우리 대중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입니다.(P226)
說般若바羅蜜多呪(설반야바라밀다주), 卽說呪曰(즉설주왈):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
마지막으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곧 그 주문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집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건너간 자,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자는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이 누구입니까?
보리 사바하!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라는 뜻은 보살혁명의 주체세력들에게 바치는 헌사eulogy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주문을 외우면서 바로 여러분들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보살혁명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야”의 궁극적 의미이겠지요.(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