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김미진
먼저 이 책은, 한 달 만에 저술을 마치기까지 현재도 이승만 전 대통령 가족의 송사에 시달리고 있을 저자의 <번뇌야말로 열반이다!>는 대오가 일체개고(一切皆苦)를 태워버리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동시대인 모두에게 권하는 철학서이다.저자는 억압된 정치 상황 속에서 양심선언문을 발표하고 고려대 철학과 교수직을 사직한 후, 자유로운 저술 활동과 TV 대중 강연을 통해 도올이란 호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사상가이다.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유도학과·한의학과 교수, 연극원 강사 등의 이력에서 그의 독특한 철학 화법의 퇴적층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저자가 방학 기간 천안 광덕사에 단기 출가 중 산사 뒷간에서 <반야심경>을 접하고 흥분에 휩싸였던 때를 시작으로, 이 시대 청년을 위해 그가 50년간 궁구한 <반야심경> 260자를 간결하게 해설하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움직이는 모든 현상은 항상 됨이 없다. 인과에 의해 끊임없이 변한다. 모든 것이 고苦다! 아~ 고통스럽다! 모든 다르마는 아我가 없다. 주체가 없다! 자기동일성의 지속이 없다! 번뇌의 불길을 끄자! 그러면 고요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게 불교의 알파-오메가입니다. 불교의 전부입니다. 아니! 불교가 이렇게 쉽단 말이오?-133~134쪽
저자는 서산대사로부터 경허, 만공을 거쳐 성철, 법정으로 이어지는 선 수행 전통의 도도한 흐름과 불교의 내밀한 인간적 모습, 큰 울림을 주는 선사들의 공안을 소개하는 한편,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반야심경>이 탄생 되기까지의 결정적 장면들을 중심으로 싯다르타에서 대승불교까지, 인도 불교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또 공空사상이 전면에 등장하는 <반야심경> 텍스트를 심도 있게 분석, 반야 지혜의 구체적 내용을 현재 우리의 문제의식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한국불교 흐름과 그 본질적 성격을 특유의 재미있는 어조로 전해준다.
우선 대승불교는 싯달타의 가르침을 따르는 초기불교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다. 대승불교는 싯달타의 종교가 아니라 보살의 종교이다.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이다. -176쪽
<반야심경>-세상에서 가장 짧고, 가장 강력한 경전의 가장 대중적 해석. 그럼에도 이 책 매력의 절반은 불교에 관심 없는, 또는 금기가 있는 일반인에게 어필할만한 쏠쏠한 입담이 등장인물과 역사의 맥락으로 포진되어 있다는 점이다. 콜레라와 동학혁명의 확산, 일체개고(一切皆苦)와 문명사적 맥락 등 해박한 지식이 풀어놓는 케미가 텍스트의 딱딱함을 풀어주면서, 저자가 이끌고자 하는 방향으로 독자의 마음을 나아가게 한다. 특히 경허선사와 사미승의 개울 건너기 일화가 던지는 방하착(防下着)의 의미는, 경쟁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기필코 천착해야 할 화두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나 경허는 말합니다: "내려놓으라!" 짐을 내려놓는데 전혀 예수의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려놓으면 됩니다. 부인과 남편과 사소한 일로 싸우고 그것이 짐이 됩니다. 그냥 내려놓으면 될 일을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이를 갈지요. …… 이 한마디만 제대로 이해해도 한평생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77~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