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적 삶을 위한 파레지아
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김순임
푸코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기 돌봄 문화에서 돌보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파레지아’다. 파레지아란 어원상 ‘모든 것을 말하기’, ‘솔직하게 말하기’, ‘자기의 진실을 남김없이 말하기’를 뜻한다. 원래 파레지아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 덕목으로, 자유인이 공론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 및 역량을 의미했다.
소크라테스의 시대, 민회에서 더 이상 파레지아가 불가능해지면서 파레지아는 철학자의 윤리적 덕목이 되었다. 푸코는 헬레니즘 시대 자기 돌봄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서 파레지아의 기술적 의미를 탐색한다.
아첨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진실의 쓴소리, 즉 파레지아가 필요한 건 이 때문이다. 파레지아를 통해 듣는 이가 타자의 아첨을 필요로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쓴소리를 통해 듣는 이가 자신의 진상을 알게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그가 타인의 아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을 낚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푸코는 파레지아의 윤리적 의미에 주목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진실한 것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말이 그의 삶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기 돌봄을 실천했다. 그는 자기를 단련했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매우 강건하게 만들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술에 취해 비틀거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유인의 삶을 위해 금욕을 실천했다. 자유롭다는 것은 달리 말해 의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옷과 좋은 음식과 좋은 집에 대한 욕구에 휘둘리면 그만큼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고,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하고, 진실하지 않은 말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항상 다수의 통념에 의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소크라테스의 파레지아적 대화 방식은 자주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주먹세례를 받거나 머리끄덩이를 잡히기 일쑤였다. 그가 발길질을 당해도 참는 것을 보고 질린 얼굴을 한 사람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나귀가 나를 발길로 걷어찼다면 나는 당나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하겠는가?”
스토아 학파의 또 다른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견유주의자를 정찰견에 비유했다. 견유주의자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류보다 앞서 파견된 정찰병이라는 것이다.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도 그렇다. 시설 밖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던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이어나갈 때, 의사결정은커녕 의사 표현조차 못할 것 같은 발달장애인이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해 나갈 때 그것은 인류 전체의 역량, 사회적 역량의 한계치를 매번 갱신하는 사건이 된다.
따라서 자립생활을 위한 탈시설 장애인의 투쟁은 장애인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문제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를 갖고 있는 집단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이 편견, 무지, 게으름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는 문제를 훨씬 더 예민하고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