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9급 공무원’의 길을 택했을까?
- S. I -
명문대 출신의 임모 씨는 노량진에서 컵밥을 먹으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그가 공무원의 길을 택한 것은 두 살 많은 친형의 영향이 컸다. 형은 3년 전 어려운 취업 시장을 뚫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마케팅팀에 입사했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주변에서는 형의 대기업 입사를 부러워했지만 정작 형은 반복되는 야근에 하루하루 지쳐만 갔고, 회사의 상명하복 문화에 실망해서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노량진으로 들어가더니 1년 만에 서울시 9급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임 씨의 친척과 주변 어른들은 ‘명문대 나와서 기껏 준비하는 게 9급 공무원이냐’며 혀를 찼다.
한국은 1960년 이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고도성장을 이룩해왔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에게는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들은 당시 현대, 삼성, 대우, LG와 같은 굴지의 기업에 고용되고, 업무 경력이 쌓이면서 조직 내 사다리를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되고, 평사원이라는 직급은 새로 회사에 입사한 대학 졸업생들에게 내주게 되는 나름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했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끊임없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같았다. 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기만 하면, 큰 문제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한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서 매 단계마다 더 많은 권한과 직업 안정성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암묵적으로 55세 정도가 되면 마침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맡고 있던 고위 임원 자리를 후배 중간관리자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는 회사와 정부가 제공하는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은퇴생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자동으로 움직이던 에스컬레이터의 전기 공급은 끊겼고, 졸지에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에 남게 된 자들은 이제 자기의 힘으로 종착지까지 올라가야 했다. 이제 그들이 올라서 있는 곳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난간 없는 유리계단이다. 오늘도 이러한 직업 세상에 있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멍으로 빠지고, 옆으로 밀려나서 떨어진다. 두렵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위만 보고 더 힘차게 달려 올라가는 방법뿐이다.(P22)
“월급이 많고 적음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월급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대기업을 다니는 선배들이 ‘굵지 않더라도 길게 다니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것을 정말 많이 봤어요. 어차피 사기업을 가서 불안에 떠느니, 굵진 않지만 길게 벌 수 있는 공무원의 길을 택하겠어요.”(P28)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은 그 시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화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틀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정진하게 된다. 작가로도 활동 중인 문유석 부장판사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는 말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 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요즘의 젊은이들 또한 저성장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같이 인간 또한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하려는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P40)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바로 새로운 세대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여러분도 점차 기성세대가 될 것이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깨닫고 있었다. 나와 같은 세대는 언젠가는 낡아 사라지고, 다음 세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