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 삼촌
-순이삼촌/저자 현기영/창작과 비평 출판/2015
우리들서평단 김미진
현대사 거장의 문학 인생 40년을 기념하고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는 「현기영 중단편 전집(3권)」 중 하나이다. 작가는 명실공히 제주와 4·3 문학을 대변한다. ‘4·3사건’은 “육지 중앙정부가 돌보지 않던 머나먼 벽지, 귀양을 떠난 적객(謫客)들이 수륙 이천리를 가며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던 유배지, 목민(牧民)에는 뜻이 전혀 없고 오로지 국마(國馬)를 살찌우는 목마(牧馬)에만 신경 썼던 (…) 백성을 위한 행정은 없고 말을 위한 행정만이 있던 천더기의 땅, 저주받은 땅, 천형의 땅”(「해룡 이야기」 159면)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제주도민의 트라우마이자 작가의 문학 인생을 완성하는 삶과 역사의 상징인 것이다. 그가 그려내는 제주도는 제주도만의 토속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서 제주도 민중이 겪어야 했던 역사로서의 제주도이며, 그래서 제주도의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로 우리 민족 전체의, 나아가 전 인류가 당면해온 보편적인 문제로도 확산되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소설을 살아온 작가는 4·3사건은 물론 소시민적 삶에 대한 회의,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 인간의 황폐한 내면 의식세계에 대한 탐닉, 그리고 교직체험에 바탕을 둔 자기 고백적 소설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제1권 『순이 삼촌』에서는 오랫동안 금기시했던 ‘4·3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표제작 《순이 삼촌》을 비롯한 10편의 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순이 삼촌》은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30년 동안 철저하게 은폐된 진실을 파헤친 문제작으로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으로 꼽힌다. 이와 더불어 ‘그날’의 처절한 현장을 역사적 현재의 수법으로 절실하게 재연해낸 《도령마루의 까마귀》, ‘4·3사건’의 비극을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적 사건으로 부각시킨 《해룡이야기》 등의 작품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지식인의 고뇌와 개인의 무력감을 섬세하게 그린 「아내와 개오동」, 소시민의식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동냥꾼」 등은 작가의 사회의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개인의 의식세계를 미학적으로 파헤친 「꽃샘바람」 「초혼굿」 「겨울 앞에서」 등에서는 초기 소설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의 부정부패를 통렬하게 풍자한 「소드방놀이」는 탁월한 상상력과 상징성으로 오늘의 세태를 정곡으로 찌른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