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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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다(201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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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_강현옥>
조선후기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평생을 보낸 유만주는 사망 1년 전까지 1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일기 '흠영'을 남겼다. 18세기 서울 사대부의 일상과 조선 사회의 여러 면모들을 매우 소상이 담아내고 있어, 조선 후기 문학사와 사상사, 풍속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기를 태워달라고 유언을 했지만 친구 임노는 통원유고를 정리하여 필사본 문집으로 엮어냈다. '흠영이 없으면 나란 존재도 없다.'고 단언할 만큼 읽고 쓰는 일은 그의 일상이며 존재의 이유였다. 그로인한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리를 아늑해 하지 않았다.
역사가가 되고 싶었던 유만주는 "밤에, 사관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양반으로서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사마천을 넘어설 궁리를 했던 게 틀림없다. 용과 호랑이가 펄펄 살아 날뛰는 것 같이 방대하다고 평가한 '항우본기'를 뛰어넘고자 했으니 말이다. 아, 안타까운 요절로 그가 기획한 <흠영잡기> <박식> <저경> <초창록>등은 책으로 남지 못하였으니 아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하여 '흠영'을 남겼으니 시공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달빛이 유독 푸르른 날, 자신의 딸과 6촌 형 유준수의 외손자 김정희가 태어난 순간을 쓰고 있다. 각기 저마다 인생이 있고 각기 저마다 세계가 있어, 분분히 일어났다 분분히 소멸한다고도 썼다. 조금 글을 쓸 줄 안다는 사람들이 뻣뻣이 구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도 쓰고, 오늘 밤엔 그저 오늘 밤의 달을 보자고 썼다. 옳거니,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된다.
일기를 쓰다 1 (흠영선집 / 돌베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을 소장하려고 드는 것은 바보짓이라 했고, 세계가 되어 가는 대로 버려두고 나는 나에게 돌아와 노닌다고도 썼다. '너한테 무슨 잘못이 있어 이처럼 일찍 세상을 뜬 것이겠느냐. 실은 나의 기박한 운명이 너에게 짐이 된 것이겠지. 이 또한 내 심장에 못 박힌 통한이다.' 어린 나이에 돌아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쓴 대목에서는 그만 심장이 얼어붙고 만다.
'흠영'을 읽으면서 나는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매일 쓰는 것은 물론, 반드시 날씨를 기록하였다. 일기를 쓰다 보니 소소하고 시시한 일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엎드려 찬찬히 들여다보고 생각에 잠긴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놀라운 변화다. '흠영' 덕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만주처럼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나답게'살아간다면 몇 날을 더 살고 덜 살고의 문제는 새의 깃털만큼 가벼운 일일 것이다.
나는「일기를 쓰다2」권을 주저 없이 든다. 초록빛 미나리가 이들이들하고, 복사꽃이 환하게 만발한 조선의 봄으로 고개를 드미는 것이다. 야호,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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