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 S. I -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노동을 대부분 알파고,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등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 강도를 낮추고··· 마침내 노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귀족이나 양반 같은 상류층 계급은 한결같이 ‘노동에서 벗어난’ 집단이었다. 그래서 정신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고귀한 삶의 척도는 육체적 노동과 물질적 생산이 아니라 정신적 깊이와 지적 확장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그런 활동은 소수에게만 허용되었지만,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그런 삶의 가능성이 모두에게 열린 것이다. 그게 대세라면 백수는 더 이상 열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18세기 조선의 사상가 연암 박지원. 그의 앞에는 입신양명의 꽃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궤도에서 이탈한다. 그것도 한창 팔팔한 청년기에. 기꺼이 백수의 길로 나선 것이다.
청년이 된 자식이 백수다. 하루 종일 골방에서 낮밤을 바꿔 살면서 컴퓨터만 붙들고 있다면, 그건 정말 부모에 대한 정신적 테러다. 일단 걸어라! 발길 닿는 대로 걸어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발견할 수 있다. 혼자 걷기 심심하다고? 인근의 도서관에 가서 사람들과 접속하는 것이다. 책과 사람,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 도서관! 나무와 꽃, 골목, 빌딩 숲, 시간의 흔적,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날 것이다.
연암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우울증을 앓을 때도, 백수가 되기로 결정한 다음엔 본격적으로 유람에 나섰다. 절친들과 함께 송도, 평양, 천마산, 묘향산, 속리산, 가야산, 화양, 단양 등을 유람했다. ‘주유천하’를 하려면 일단 걷기부터 시작하라. 자신의 두 발을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라. 다리를 움직이면 머리가 맑아진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탁해진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P163)
백수는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탐구한다. 세상이 스승이고 인생이 학교다. 이 앎의 지평선은 무한하다. 그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알게 되리라. 삶은 삶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오늘 하루가 곧 일생이라는 것을.
“그대는 나날이 나아가십시오. 나 또한 나날이 나아가겠습니다.”- 박지원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