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마음이 활자로 돋아난 날

말랑말랑한 힘함민복 저 문학세계사 펴냄

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장찬구

 

몇 년 전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 편의 시를 만났다.

그 우연한 만남은 잔잔하게 다가 왔으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내게 쉼표와 같은 친구로 남았다.

이렇게 함민복 이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고, 그와 만남이 나만의 짝사랑으로 끝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하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긍젇적인 밥 중에서)

 

이 시는 1996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이다.

시는 글을 쓰는 삶 즉, 시인으로서 밥벌이 한다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노래하지만, 시인이 쓴 시 한편이, 시집 한권이 쌀이 되고, 밥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시를 만나 시인을 알았으며 시인을 알게 되어 더욱 그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함민복의 시는 서정성을 토대로 쓰인 시이다. 그 서정성의 바탕에는 일상이 스며들어 있어 읽기 쉽다. 시 한 편 읽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곁에 머물러 메말라 가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 감성을 촉촉이 적셔 줄 시라 자부한다.

 

2005년 출간된말랑말랑한 힘은 그의 네 번째 시집으로 강화도 생활을 통해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대인 삶과 도시의 딱딱함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갯펄의 힘을 전해주고자 한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중략-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p121.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중에서)

시집은 1부 길, 2부 그림자, 3부 죄, 4부 뻘. 총 네 꼭지로 총 55편의 시가 수록되어있다. 시집 마지막에는 섬이 하나면 섬은 섬이 될 수 없다라는 짧은 산문도 함께 실려 있다. 시집에 수록된 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시적 서정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이 시집을 통해 저자는 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 함민복은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으며 세계의 문학에서 성선설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집으로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경계에는 꽃이 핀다등이 있다.

그의 초기 시는 자본주의 속성들을 속속들이 비판하는 데 주력했으나 지금은 거대한 세계를 비판하는 대신 그 속에서 상처받은 작고 연약한 것들을 부둥켜안는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따뜻한 밥이 되어 지친 이를 품에 안은 듯한 따사로움. 함민복의 시에는 그런 따뜻함이 묻어난다.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서 하늘을 보고, 땅의 냄새를 맡고, 한 권의 시집을 옆에 두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여유로움과 가을 햇살처럼 빛나는 삶을 시인 함민복과 그의 시집을 통해 느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