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는 근대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상이한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이라고 보았다. 그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카스트는 현인, 군인, 상인으로 대표된다. 기원전 2300년경 사상 최초 ‘곡물 수취’에 기반한 ‘농업사회형 제국’이 전사 유목민과 지주 세력에 의해 건설되었다.
귀족 집단은 지배체제 정당화 논리를 제공하는 사제집단과 동맹을 맺고 이들을 관리하고자 관료제를 활용했다. 귀족, 사제, 관료집단은 당대의 엘리트라 할 수 있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네덜란드식 상인-귀족 통치 모델을 수립, 1694년 영란은행의 설립으로 상인집단이 권력 핵심에 부상하게 되고, 역사상 최초로 상인집단이 농경 기반 국가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대영제국은 또한 이들을 통해 전 세계에서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영국을 제외한 미국, 일본, 독일은 국부 창출 과정에서 상인집단의 역할이 커져서 급기야 미국은 순수 상인집단의 규율을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하기에 이르고, 이러한 명예욕과 영웅주의 덕에 평화로운 세계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전쟁이 초래한 대학살로 귀족 사회가 누렸던 신뢰가 무너졌고 그들이 주도한 제국도 힘을 잃고 그 결과 상인집단 단일지배 체제의 토양이 마련된다.
그러나 이들 상인집단 체제 역시 1929년 대공황으로 시장자유주의가 무너지고, 그 와중에 급진 우파 국수주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체계 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니, 저자가 선호하는 새로운 모델의 국가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등장한다.
현인적 모델- 체제의 궁극적 관리 감독은 현인-테크노라트 집단이 수행하고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체제 전반을 지탱하는 방식으로,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확고해진다.
그러나 현인 집단체계가 포용성의 한계, 냉전에 의존, 1970년대 발생한 여러 차례 경제 위기와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과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상인집단의 반격에 직면한다.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등장으로 결국 상인집단 단일 패권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상인집단의 치세는 모든 이들에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단기효율성과 과도한 유연성에 입각해 압박함으로써 인간의 행복 추구에 불가결한 요소인 가치체계를 훼손할 위험을 초래했다. 상인집단의 에토스와 현대 경제를 조화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상인집단의 주요 가치는 변화하는 사회의 문화요구에 대한 민감성과 유연성을 우선시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장기적 관점의 자본 투자를 꺼리는데, 이는 대규모 산업개발이나 구조조정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오늘날 세계는 3중 위기에 처해있다. 경기침체, 부채, 국제무역 및 금융 불균형이 맞물려 초래한 위기 국면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상인지배체제가 초래한 예견 가능한 결과라고 본다.
일독하며, 어쩌다 우리가 오늘날 재벌 혹은 금융자본으로 대변되는 산업사회의 부속품이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볼 기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