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지킬게
- S. I -
빨간 스웨터를 입은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 자고 있었다. 나이는 소고와 비슷해 보였다. 하얀 두 뺨에 분홍색 입술, 긴 속눈썹. 가슴이 희미하게 오르내렸다. 숨소리가 들려올 것 만 같았다.
왜 휠체어에서 자고 있지. 혹시 걷지 못하는 걸까.
그 저택에 들어간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소고는 잠만 자는 소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저택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아니 뭘 하다가도 불쑥 소녀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다리가 불편하지는 않지만, 이라고 엄마인 듯한 여자는 말했다. 그런데도 걸을 수 없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언제부터인가 그 소녀를 생각할 때마다 소고의 머릿속에서는 인어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어는 걷지 못한다. 그래서 그 저택에서 소중히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그 소녀가 인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던 때는 그 무렵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고는 ‘인어’를 떠올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소고가 다시 인어를 떠올린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의 일이다.(P13)
수술한 지 석 달 만에 소고는 퇴원했다. 그리고 2년 몇 개월이 더 지나자 소고 가족은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게 되었다.
소고가 차에서 내린 이유는 이 길이 반가워서만은 아니다. 목적지는 그 저택이었다. 아름다운 소녀가 휠체어에 잠들어 있는 집. 웬일인지 수술을 받은 후로 몇 번이나 그 집이 꿈에 나타났다. 거기서 누군가 소고를 부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택은 사라지고 없었다. 건물도 담장도 대문도 사라지고 공터만 남았다. 아주 조그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소고는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장미향이 풍겨 왔다. 수술 후로 자주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장미는 보이지 않았다.
소고는 가슴에 살며시 손을 댔다. 장미향은 이 심장의 원래 주인이 가져온 것 아닐까.
그리고 확신했다.
내게 소중한 생명을 준 아이는 깊은 사랑과 장미향에 둘러싸여 행복했을 거라고.(P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