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다

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_ 김미진

"눈한송이의 의지가 모여 폭설이 되듯 [건너편]" 숱한 낱말을 모아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최근 강진도서관 독서대학 초청 강연으로 만난 <<골목에 관한 어떤 오마주>>의 권정현을 비롯, 특별히 이 책의 저자 김애란 등 젊은 작가들이 내놓는 상상의 지평을 보면서 새삼 글 쓰는 이들의 내면세계가 경외롭다는 생각에 빠진다.

한 사람이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은 그가 지나온 모든 시간을 품고 삭혀서 드러낸 총체적 어떤 것이라고 본다면 작가의 다음 기술은 내 경외로움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풍경의 쓸모]"
 
제37회 이상 문학상 [침묵의 미래], 제8회 젊은 작가상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을 수상한 김애란은 최연소 등단의 수식어를 달고 있는 15년차 작가이다.
 
수록된 7편의 단편 가운데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풍경의 쓸모]" 는 문장에서 가져왔을 제목은, '바깥은 여름'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안'에 관심을 갖는 작가의 특별한 시선이 드러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입동]"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물밑에 가라앉은 조약돌처럼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닳아가는 이의 얼어붙은 내면을 추적하고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주려는 따뜻한 눈빛이 역력하다.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에서부터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접어둔 인물까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타인을 향한 작가만의 관찰로 만들어지는 등장인물의 삶을 다양한 소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작가의 태도가 소설 속에 녹아 있는지의 판단은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우리의 언어로 들었을 때 느끼게 되는 친밀감과 반가움이 그녀의 소설에는 있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과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쓰 [침묵의 미래]"는 캐릭터는 우리시대 외로운 누군가의 모습이다.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예의'였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는 서술은 비록 무례하더라도 기계보다는 사람에게 가는 길 위에 우리가 서있어야 함을 가리키고 있는 작가의 손끝을 보여준다. 막막한 상황을 껴안은 채 써내려간 간절한 말의 세계가 침묵에서 부활해 말을 하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읽혀 오래 기억되기를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