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고 섬세한 인간의 무늬

[책 한권이 강진을 바꾼다] 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강현옥

책의 문턱부터 문밖을 나올 때까지 신선한 글밭을 산책하느라 황홀지경이었다. 인간이 그린 무늬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문장이요, 인간이 발산한 향기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이 문장의 향기이다. 인간이 그려낸 치밀하고 섬세한 무늬가 바로 "문장의 품격"인 것이다.
 
소품문에 대한 선구자적인 연구로 옛글을 고증하고 해석하는 안대회교수가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을 초대하여 한바탕 글 잔치를 벌였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문제, 저잣거리 서민의 풍속, 농담과 익살이 담긴 제문, 신분의 벽에 대한 울분, 낙오자의 동병상련을 고스란히 담아 해학적이고 실험적인 문장을 도도히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원문을 싣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성인은 지나가는 그림자니 나는 내게로 돌아가리라."환아잠(還我箴)을 외친 이용휴,"강물 소리는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다. 단지 마음속으로 그러리라고 가정한 것을 귀가 소리로 만들어 들었을 뿐이다."하룻밤에 물을 아홉 번 건넨 박지원,"동쪽에도 창이 있고 남쪽도 창이 있고 서쪽에도 창이 있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쫓아가며 햇볕 아래서 책을 읽는다.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살구꽃이 막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막 피면 한 번 모인다."꽃이 피면 지인들과 모여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던 정약용 등을 일일이 소개하고 싶지만, 이옥의"문학이 신에게 올리는 제문"을 일부 인용함으로써 독자의 입맛을 돋우고자 한다.
 
아! 아! 문학의 신이여! 내가 그대를 저버린 일이 너무도 많구나! 나는 배냇니를 갈기 전부터 글 쓰는 일에 종사했으므로 그대가 나와 동무가 된 지도 어느덧 이십이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 천성이 게을러 부지런하지 못한 관계로, 전후에 읽은 책 가운데 <서경>은 겨우 사백 번을 읽었고, <시경>은 백독을 했는데 아송은 배를 더 읽었다. <주역>은 삼십 독을 했고, 공자 맹자 증자 자사가 지은 <사서>는 그보다 이십 독을 더했다. (중략)
 


이옥, 그는 일곱 번이나 과장에 들어갔으나 끝내 한 번도 합격하지 못한 자신을 위로하며 문학의 신에게'작가가 되려는 노력을 지켜봐 달라'며 애원하고 있다. 귀엽고 애잔하지 않은가?
 
이토록 짧은 문장이라면 나도 한번…, 글쓰기욕심을 내보는 건 어떨까? 한 해가 다 가기 전, 함께 용기내실 분 손들어 봐요. 저요! 저요!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