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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운동 별서정원(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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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그늘에 들어서니 나는 바람이 되고>-백운동 별서 정원으로 가는 소로에 들어서면서 이내 탄성이 터진다. 8월 무더운 날, 신호 대기 중 서울시청 광장에 올려져있던 문구가 문득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울창한 동백나무 그늘이 하늘을 덮어 동굴로 드는 듯 몸에서 서늘한 바람이 일었기 때문이다. 다산의 <<백운첩>>에 나오는 백운동 12경 중 제2경 산다경의 만로음(滿路陰)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길 가득 온통 그늘' 을 울퉁불퉁 따라가다 보면 마른 계곡을 건너는 돌다리가 나오고, 제3경 백매오, 제4경 홍옥폭, 제5경 유상곡수...제12경 운당원의 대숲 앞에 멈추게 된다.
<<문화유산답사기>>로 '남도답사1번지' 강진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유홍준 교수에 이어, 호남 3대 원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할 백운동 별서 정원의 원형 복원을 주도한 한양대 정민 교수의 저서를 접하고 직접 답사한 날의 기억이다. 그와 더불어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을 거닐어 보기를 권한다.
2006년부터 이어진 백운동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수집된 모든 사료가 망라되어 기록된 바, 때로 일반 독자들은 한 고개 두 고개 리프트 타고 쓰~윽 지나쳐도 무방한 부분이 다소 있다. 잠시는 400년 전 원주인 이담로 선생과 신선놀이에 젖어보고 6대조 이덕휘 선생과 다산 선생의 백운대첩(大捷)을 관람할 수도 있다.
본래 무관 가문이던 이담로 선생은 문과 시험에 실패하자 바로 뜻을 접고 53세 즈음 별서를 마련하여 90여세까지 은거하며 유유자적했다고 한다. 2자인 이언길 선생이 어려서 따라 들어가 '평정'의 유언을 지킴으로 인해, 그 후손인 6대조 이덕휘 선생과 다산 선생이 백운동에서 조우하게 되니 역사 속 인연이란 참 신기할 따름이다.
기록에 따르면 다산 선생이 월출산 첫 산행에 실패하고 두번째 산행도 중도하차하여 찾아든 곳이 백운동 별서였다고 한다. 백운동은 이미 그 당시 알려진 명소였으니 이담로 선생의 별서가별유천지였음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하룻밤 묵고 떠난 후에도 잊지 못한 터에, 이덕휘 선생의 요청으로 백운동 12경을 짓고 덧붙여 20대의 초의가 그린 <백운동도>와 <다산초당도>를 비견해 엮은 것이 다산선생의 <<백운첩(白雲牒>>이다. 어느 곳이 더 선경(仙景)인가? <<백운첩>>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백운동 비밀정원을 발굴하고 12경의 아름다움을 복원하여 다시 볼 수 있게 됨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행운인지 모르겠다.
사유지로 사라질 뻔한 공간을 사료를 찾아 전통원림의 보존 가치를 부여하고 문화유적지로서 후대에까지 전하는 데 초석을 다지는 일의 험난한 여정이 이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한 장소와 관련하여서는 가장 많이 품고 있다는 문학 자료와 김충호 사진작가가 찍은 최근 복원 현장 사진들이 가득 담겨 있어 딱딱함이 많지 않다. 다산의 작품들과 함께 틈틈이 꺼내 보며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더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다.
책 한 가운데까지 잘 거닐어 올랐다면 <<한시미학>>에서 보여준 저자의 해박한 해석-문학 산책으로 이끄는 지점에 닿게 되니, 듬성듬성 읽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이 가을 <<강진백운동별서정원>>을 거닐며 바람이 되어 점입가경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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