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세상
- S. I -
타인이든 자신이든 삶에 대한 읽기 능력인 리터러시가 잘 되고 있어야 우리의 삶도 바람직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영화에 대한 읽기를 『필름 리터러시』라고 하였다.
<영화와 소설 『상실의 시대』의 사유 체계 연구>
소설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으로 연애나 사랑의 욕망 같은 것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죽음에 대한 성찰이나 삶에 대한 깊은 관조적 시선이 언급되어 있다. 자연 친화적 상징성과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는 시각은 서구의 사유 체계와는 다른 동아시아 사유 체계적 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하루키 소설의 언어는 상징성이 강하다. 책의 등장인물인 나오코가 자폐증만을 가지고 있다는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는 적절하게 맺지 못하지만 자신의 본성과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성찰하는 캐릭터로 보고 접근하고자 한다. ‘뭔가 말하려 해도 언제나 빗나가는 말밖에 떠오르질 않고, 빗나가거나 전혀 반대로 말’하게 되는 ‘말찾기병’은 언어의 부조리성을 인식한 하루키의 언어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레이코의 연주가 자주 나오는 것은 하루키의 사유 체계가 이성적 사유를 넘어서는 감성적·본능적 사유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도가적 사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세계관이 노자의 상관론적 사유에서 비롯되고 있고,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함의하고 있으며, 차이에 의해 서로 얽히는 그물망과 같은 상관적 차이가 상호성에 의해 쌍방이 생기며 균형이 맞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루키 문학이 직접적으로 현실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의식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 현실에 대한 인간의 태도나 반응보다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본성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가 우리나라에서는 부제가 되고, 제목이 ‘상실의 시대’로 번역이 된 것은 이 소설에 나타난 시대적 상실감이 개인적 상실감으로 환원되는 일본 문학의 하나의 경향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상실의 시대』는 2010년 베트남 출신 감독 트란 안 홍에 의해 만들어졌고, 원작자인 하루키의 서사적 특성을 상당히 많이 살렸다고 볼 수 있지만, 트란 안 홍 감독의 색채가 당연히 가미될 수밖에 없다.
트란 안 홍 감독이 쇼트를 구성할 때 인물의 내면이나 주제를 풍경에 투사시켜 자연풍광이라는 공간적 요소와 함께 주제를 전달하는 점은 노자의 자연친화적 사유 체계와도 만나는 점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나오코의 고백 장면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로케이션 장소를 신중하게 찾았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 둥글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공간, 우리가 찾아낸 초원은 에로틱하기보다는 관능적이었다. 대신 나오코의 고백은 매우 터프하고 격렬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긴장감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매우 빠르게 부는 바람이 필요했다. 바람과 빠른 보폭의 걸음이야말로 관객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감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신적인 고통을 이야기하더라도 관객에게 육체적이고 실질적인 감각을 전달하길 원했다.”는 말했다. 그래서 초원과 나오코의 에로틱한 고백은 마치 하나가 된 듯하다.
소설 『상실의 시대』는 작가의 사유 체계가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던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트란 안 홍의 영화 『상실의 시대』에서도 다르지 않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상실의 시대』가 ‘청춘이 성장하기 위한 아픔과 사랑의 상처를 기록한 비망록’이라는 타이틀로 불리던 것을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깊은 사유 체계 속에서 창작되었음을 밝히는 작업이며, 역사와 시대를 무화시킨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을 넘어서는 보다 근원적인 사유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